아래 글은 수전 손택의 '사진에 관하여'란 책에서 '사진의 복음'이란 장의 1/3 ~ 1/4 정도 되는 내용을 읽고 적은 것 입니다.



2008/10/11 - [분류 전체보기] - 사진의 복음, 수전 손택의 '사진에 관하여'에서 - 2부


사진의 복음

 

2008.10.12



Félix Nadar - "Victor Hugo"



 

사진의 숙명은 아름다움을 찍는 다는 것이다. 어떠한 다른 의미를 담으려 해도 사진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만다.

è 사진이 무엇인가를 이해하게끔 만들어준다는 환상에도 불구하고, 정작 사진을 통해서 바라보는 행위는 우리로 하여금 이 세계를 취득의 대상으로만 여기게 만들며, 결국 미적 의식은 고양시킬지언정 정서를 메마르게 만든다.

 

 

사진이 초기에는 공격을 받다가 곧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진을 예술로써 왜 가치가 있다고 강조하려는 시도가 계속될까?

 

사진은 시각을 확대했다. (expand) 그러나 이것은 사진에 대한 어쩌면 시각에 대한 두가지 상이한 관점을 불러일으켰다.

 

1) 사진을 찍다: 명석 판명한 앎의 행위이자 신중한 사유행위이다. , 이성적이고 인식적인 활동이다. 무엇을 본다 와 안다는 같은 의미이다. (looking/seeing == knowing)

  나다르: 내가 찍은 최고의 인물 사진은 내가 제일 잘 아는 사람의 사진이다.

 

2) 사진을 찍다: 사유에 앞서는 직관적 접근 방식이다. , 감성적이고 무의식적인 활동이다. 무엇을 본다는 것은 시각 자극이 뇌의 인식까지 다다르기 전에 이미 무의식적인 반응을 일으킨다. 그것이 중요하다.

  리처드 아베든: 자신이 찍은 최고의 인물 사진은 자신이 처음 만난 사람의 사진이다.

 

20세기에는 직관적 접근 방법이 대세를 이룸.

a)       마이너 화이트: “사진을 찍는 순간/보고 있는 순간 사진작가의 마음은 공백이다.”

b)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생각은 사진을 찍을 때가 아니라 사진을 찍기 전이나 뒤에 해야 한다.”

 

, 20세기에 들어와 앎 없는 앎의 형식이라는 직관적으로 파악한 세계를 강조하게 된다.

 

그러나, 사진 찍는 데에는 상당한 기술과 의식적 노력이 필요함을 강조하는 작가도 있었다.

a)       안셀 애덤스: “사진은 우연한 사고의 산물이 아니다. … ‘자동기관총을 쏘아대듯이 사진을 찍어대면 심각한 결과가 빚어질 수 밖에 없다.” (발제자 주: 안셀 애덤스는 상당히 고지식하고 일반인이 대강 사진 찍는 것을 엄청 싫어했을 듯한 스타일입니다. 사진을 보면 이 사람이 매우 보수적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이러한 완숙미를 주장하던 사람들에게 기분 나쁜 일이 일어났다. ‘반反지성주의가 대두됨으로써 지식의 사진에서 사진의 사진, 즉 사진 자체 내의 힘을 탐구할 수 있는 흐름이 나타났다.

 

지식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작아지면서, 창의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게 되었다. ‘개성이 가장 중요하지 기계는 부차적일 뿐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로젠펠드 曰 자신의 기계를 기계적으로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카메라가 자아를 표현할 수 있는 기회뿐만 아니라 손으로 그릴 수 있는 것보다훨씬 폭넓고 섬세한이미지를 제공한다는 점을 보여줬다. (, 카메라는 나를 표현하기 위한 것이므로, 그 표현 가능성과 나 자신을 크게 드러낼 수 있는 사진을 찍는 게 좋겠다는 말이겠지요.)

 

여기서 독착성을 사진 작가의 작품을 평가하는 주요 기준으로 삼는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독창성 독창성 독창성 독창성

 

이렇게 보면, ‘진실한 표현신뢰할 만한 기록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요? 둘의 우열을 가리는 것은 무의미한 것이지만, ‘사진이 위 두 가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는 것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세상의 여러 가지 다른 문제들과 마찬가지로 사진도 자아와 세계, 주관과 객관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이 두 가지 태도는

a) 사진은이 세상에서 갈 곳 없이 헤매는 사적 자아를 정확히 드러내어 준다.

b) 사진은이 세상과 초연한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해줌으로써 이 세상에서 제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해주는 도구이다.

 

이 두 태도는 사실 비슷한 이야기라네요.

 

결국 사물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야 한다는 경건한 고백, 사진이 사실적인데도 사진가들은 항상 사진을 찍을 때에는 사실적으로 찍어야 한다고 강조한답니다. 왜 그럴까요? 어쩌면 사진이 정말 사실적이지 않기 때문에, 그러한 것을 감추기 위해서 사진가들이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닐까요?

 

. 아무튼 사진의 리얼리즘은 실제로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실제로지각한 것을 보여주는 그 무엇이라고 정의될 수 있다고 합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과 세계의 관계가 중요한 리얼리즘의 대상이라는 것이지요.

 

이렇게 리얼하게 무언가를 보여주려는 리얼리즘현실은 은폐되어 있고, 은폐되어 있으니 드러내야만 하는 어떤 것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세상/현실은 잘 보이지 않으니 우리 사진가들이 대중들에게 제대로 그 정수를 보여 주어야겠다뭐 이런 뜻인가요?

 

이렇게 사진으로 세상을 드러내려 하지만, 실상 사진 이미지와 진짜 세계는 점차 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카메라가 어떤 장면을 찍는 순간, 진짜 세계가 아니라 카메라로 그 현실을 찍은 개인의 기질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저도 아래와 같이 올해 4월에 생각했다구요 !!!)

 

낸시 랭이 아닌 도로시 랭은 자신이 아닌 남을 찍은 인물 사진은 곧 그 사진을 찍은 사람의 자화상이라고 여겼답니다. ㅎㅎㅎ

 

사진은 사진가 멋대로 바라본 세상이기 때문에 상당히 주관적일 수 밖에 없는데, 사진이 이렇게 제멋대로라면 불편하니까, 사진가들은 이상적인 관찰자로서의 사진작가라는 관점을 추구하려 노력합니다. 개념 있는 사진 작가들은 사진의 속성 혹은 찍어준다는 것의 속성인 약탈성을 숨기거나 혹은 순화시키려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래서 말도 바꿉니다. 안셀 애덤스는 사진을 찍는다 take’고 말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며 늘 만든다 make’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네요. 그게 그거지만.

 

아무튼 사진을 찍을 때에 자아를 배제해야 한다는 이야기와 자아와 세계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라는 이야기는 돌고 돕니다.

 

여기서 중요한지 안한지는 모르겠지만.. 카메라의 기계적 속성이 사진가를 괴롭힙니다. 카메라 기술이 좋아져서 사진이 좋아지는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일단의 사진가들은 구닥다리 카메라를 계속 사용하면서,, 내 사진은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이고, 기계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몸으로 주장합니다.

 

(쉬어가는 페이지)

사진 신기술이 예전 과거와 연관되어 보이는 지점들

a)       폴라로이드: 다케레오타입 카메라의 재해석이라고 할 수 있음.

b)      홀로그램: 사진 기술 초창기때 등장했던 헬리오그램의 변형 (?)

c)       슬라이드: 카메라의 원시인격인 카메라 옵스쿠라의 몹쓸 재현

d)      그럼 디지털 카메라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결론적으로 왔다리 갔다리 하는 이야기들

1)       예상치 못한 요소를 통제하자” vs “예상치 못한 요소를 계발하자

2)       복잡하게 진화한 매체를 활용하자” vs “우연을 통해서 사진을 혁신하자

 

이 모든 것이 리얼리즘때문이랍니다. 리얼리?



2007/03/14 - [일상 (Everyday affair)] - 만레이 사진전
2007/05/13 - [잡담(Misc)] - 로버트 카파 전시회 다녀왔습니다.
2007/03/11 - [일상 (Everyday affair)] - 사진 책들
2007/03/25 - [전시공연(Exhibition)] - 앤디 워홀 전시전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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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관하여
카테고리 시/에세이/기행
지은이 수전 손택 (이후(시울),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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