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수전 손택의 '사진에 관하여'란 책에서 '사진의 복음'이란 장의 뒷부분 내용을 읽고 적은 것 입니다.


2008/10/09 - [분류 전체보기] - 사진의 복음, 수잔 손탁의 '사진에 관하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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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예술

 

사진이 예술이다 아니다라는 주제는 사진이 탄생하고 나서 계속 반복되는 논쟁의 중심 주제였다. 예술이라고 주장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말과 작품활동으로 서로의 의견을 표현했다. 그러면서 예술을 둘러싼 관념은 논쟁 도구로 쓰이며 기력을 소진했다.”

 

하지만 잘 살펴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예술이 된다는 것에 대해 사진이 내보였던 양면성이라는 것이 그것인데, “만약 오늘날의 사진작가가 자신이 예술 작품을 만들고 있다는 것을 부정한다면, 그 이유는 자신이 예술 작품을 만드는 것보다 훨씬 더 나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 사진은 예술이란 고상한 활동이거나 예술보다 더 고상한 활동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지만 사진작가들의 (어쩌면) 유치한 생각들 몇 가지가 있는데,

1)       회화를 액자 속에 넣듯이 사진도 액자 속에 넣어서 박물관에 걸어야 한다. 잡지나 책에 인쇄 형태로 실리는 것 말고

2)       실물과 닮고 좀 가벼워 보이는 컬러 사진보다 은은하고 덜 관음적인 흑백 이미지가 더 좋다

 

최근 (당시) 에는 예술과 사진에 대한 논쟁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서서히 사진이 자연스럽게 예술로 인정받게 되었는데, 그 배경에는 60년대 대중이 당시 유행했던 복잡하고 불가해한 추상예술에 부담을 느끼게 되었고, 보다 쉽게 보이는 사진으로 관심을 돌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전통적 모더니즘 계열 회화 감상 능력이 고도로 발달되어 있어야 하고, 다른 에술에도 정통해야 하며, 예술사에 대한 특정 견해에도 훤해야 한다.

사진 팝아트처럼 어렵지 않다.

 

이렇게 사진이 대중 예술로 인정받게 되자 “[사진은] 더 복잡해져야 한다고 은근히 계속 요구하는시도도 증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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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과 사진전

 

대중이 사진을 선택하자 미술관이 사진을 걸기 시작했다. 이로써 아마추어, 대중과 가까운 예술 장르(?)가 탄생한 것이다. “무명의 마마추어가 찍은 사진 중에도 흥미롭고, 형식이 복합적이며, 스티글리츠나 에반스의 사진이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사진 특유의 힘을 지닌 사진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대중화는 전문 사진작가들을 불편하게 만들기도 한다. “전문 사진작가들의 기분은 심란하다. 상당수 사진작가는 사진이 새롭게 정통성을 얻게 된 것은 반가워하겠지만 [자신이 찍은] 가장 야심 찬 이미지가 보도 사진, 연구용 사진, 가족의 스냅 사진 등 온갖 종류의 이미지와 동일 선상에서 언급되면 위기감을 느낀다. 자신의 사진을 하찮고 저속한 것, 조잡한 물건쯤으로 취급한다고 투덜대면서.”

 

미술관이 전시를 위해 사진을 거는 순간 사진은 더 이상 똑 같은 의도나 원래 방식대로 피사체를 보여주지 못하게 된다.

 

이즈음에서 수잔 손탁은 사진의 힘을 예술가의 의식을 보여주는것이 아닌 이 세상을 보여주는 이미지 (혹은 복제) ‘에 더 두고 있는 듯 보인다.

 

사진의 이러한 속성 (기계에 의존하고 세상에 있는 피사체를 복제하다는 것) 때문에 사진가는 회화 같은 다른 예술 장르의 작가보다 더 골치 아픈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회화 같은 장르에서는 한 작가의 작품 들은 일정한 분위기나 기법을 공유하게 되어 독창적인 분위기를 갖고 있다. (: 피카소, 고흐 …) 그러나 사진의 경우에는 그러한 것이 별로 없기 때문에 사진 작가들이 일부러 주제나 사진 기법을 고정시켜야 한다. (“남성의 누드를 다룬 토머스 에이킨스나 옛 남부의 모습을 다룬 러플린 처럼”)

 

사진은 기법이나 작가 보다는 피사체에 더 크게 의존할 수 밖에 없고, 관객들도 피사체에 집중한다. (예쁜 여자를 찍으면 일단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것 ???)

 

사진의 권위가 늘 피사체와의 관계에 좌우된다면 (예컨대 이것은 그 무엇인가를 찍은 사진이다), 예술로서의 사진에 관한 모든 주장은 바라보기의 주관성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사진 찍는 기술적 성숙도로 예술성을 평가하던 시기 (웨스턴, 1920-30년대?) 도 있었지만 이런 입장은 곧 사라졌다.

 

사진의 바라보기속성 때문에, 피사체는 두 극단으로 치닫게 된다. ‘하찮은 피사체대단히 진부한 피사체’ … 새롭고 보잘 것 없는 피사체를 발굴하면 그 순간 그것은 진부해진다.

 

이러한 속성들 때문에 미술관과 전문 사진작가는 다음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한다. “스스로 예술임을 인정받으려면 사진은 사진작가도 창작자라는 인식, 그리고 동일한 사진작가가 찍은 모든 사진은 그가 찍은 전체 작품의 일부라는 인식을 계발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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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평가

 

사진의 비평 전통이 풍부하지 않기 때문에 사진을 평가하는 언어는 극히 빈약하다.

 

구성,    빛의 효과,         섬세하다,

흥미롭다,          힘이 있다,        복잡하다,          단순하다,

믿을 수 없을 만큼 간결하다

 

 

회화

미학적 기준: 진품인가 모조품인가, 솜씨가 훌륭한가

감정 할 때 중요한 것들: 개인의 자체 내 완결성을 갖춘 작품 전체, 유파, 도상학적 전통등과 맺고 있는 관계

 

사진

미학적 기준: 매우 관대함

감정 할 때 중요한 것들: 어느 개인이 찍은 광범위한 사진 전체가 굳이 스타일상의 내적 일관성을 가질 필요도 없고, 개별 사진작가도 특정 사진학파와 피상적인 관계를 맺는다.

 

사진은 충분히 세월을 타기만 하면 감동적일 뿐만 아니라 흥미로워지기까지 한다. 모든 사진은 더 흥미롭던지 덜 흥미로울 뿐이다. 미술관 전시는 작품의 가치가 올라가는 시간을 단축 시키는 역할을 할 뿐이다.

 

미술관은 사진에 대한 동시대 취향을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

 

또한, 사진은 다른 예술보다 취향이 다양하고 평등하기 때문에 미술관은 모든 학파의 사진을 똑같이 대한다.”

 

어떤 작가를 특정한 학파나 운동에 결부시키는 것은 사진을 회화에 비유하려드는 것만큼이나 억누르기 힘들지만 늘 반복되는 오해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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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회화

 

처음에는 사진이 회화의 적으로 여겨졌다. (세상에 대한 묘사) 그러나 사진은 회화를 자유롭게 해 주었다. (기록의 의무를 제거해 줌과 동시에 표현의 자유를 부여함.)

 

사진과 회화는 서로 도와주는 평등한 관계처럼 보이지만, 사실 사진이 회화를 압도한다. 대부분의 대중은 회화를 사진으로 접하며, 사진으로만 볼 수 있는 작품도 등장한다. (항공 촬영에 의해서만 볼 수 있는 작품들 윌터 드 마리아, 로버트 스미드슨)

 

사진도 언어와 마찬가지로 예술 작품을 만들 때 활용하는 매개체이다.” , 수단, 미디어, 연장, 새로운 감각기관 이런 것이다. “그렇지만 결국 사진은 예술을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만드는 경향이 더 강하다.”

 

가장 마지막 부분은 책을 그냥 읽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전통적인 ~  갈망한다고.”

 


사진에 관하여
카테고리 시/에세이/기행
지은이 수전 손택 (이후(시울),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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