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01년 교양과목으로 수강했던 "미술론 입문" 숙제로 작성한 리포트입니다. 작품 하나를 선정해서 그 그림에 대한 감상문을 쓰는 것이 과제였는데, 저는 고흐의 "까마귀가 나는 밀밭"을 주제로 선택하였습니다. 그 작품이 제게 최초로 강한 인상을 남겨 준 그림이었기 때문에 선택하였지요. 아직도 회화를 잘 이해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제게 있어서 회화에 대한 느낌을 적은 본격적인 글로는 처음이기 때문에 올려봅니다. 앞으로도 작품들에 대한 감상평을 계속 적을 수 있었으면 좋겠군요.



0. 까마귀가 밀밭위를 날다.

내가 이 작품을 처음 접한 것은 학기초의 어느날 이었다. 강의실에 조용히 앉아 대학신문을 뒤적이다가 무심코 마지막 면을 펴 보았다. 희미한 흑백 그림 한 장과 함께, 한 시인의 글이 실려 있었다. 가만히 그 시인의 글을 읽다 보니, 그 그림은 고흐가 그린 [까마귀가 나는 밀밭]이었다. 그 당시 고흐의 해바라기 연작에 관심이 있어서 고흐의 작품중에서 주제를 선택하려던 참이었기에 그 그림과 글은 내게 호기심을 끌게 만들었다. 하지만 바로 내 주제로 선택하지는 않았고, 그 그림은 신문을 접으면서 내 기억속에서 희미해져 갔다. 단지 ‘죽음을 암시하는 그림’이란 매혹적인 수사만을 남긴채.

한달쯤 후, 본격적인 작품을 선정하기 위해 고흐에 대한 책을 하나 사 보았다. 그리고 고흐의 인생과 여러 작품들을 보면서 고흐가 어떤 사람이었나를 알아가게 되었다. 예전에 알고있었던 고흐의 이미지는 ‘광기어린 천재’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목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곁으로 가고자 하였던 건실한 청년의 모습을 알게 되면서 고흐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하느님의 가르침을 들고 어두운 현실을 밝혀보려던 청년 고흐는 어렸을 적부터 접하던 그림에 좀더 매혹되었고, 20대 후반에 화가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미술로써 세상에 빛을 던지기 위해 그는 헌신적이고 성실하게 노력을 하였다. 그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타고난 천재가 아니라 노력해서 자신의 능력을 개발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의 천재성과 헌신은 세상과 조금씩 마찰을 빚기 시작했다. 그의 타고난 정신적 문제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다름을 철저히 거부하는 사회의 압박 때문이었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고흐는 점차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취급받게 되었고, 정신적 평정을 잃어가게 된다. 결국 정신병원에서 요양을 하다가, 한적한 오베르 지방에서 가셰박사의 치료를 받으면서 마지막으로 열정적인 작품활동에 몰두하다가 1890년 7월 27일 자신의 가슴에 방아쇠를 당기고 29일 동생 테오가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

그가 정신병원에서 요양하다가 마지막으로 창작활동을 하던 시기에 그려진 이 [까마귀가 나는 밀밭]을 칼라 도판으로 보았을 때, 온몸에 전율이 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흑백의 작은 사진에서 볼수 없었던 강렬한 붓의 터치와, 암울한 암청색의 하늘, 격렬히 요동하는 밀밭의 풍경, 숨이 넘어갈 듯 가슴을 죄여오는 저 머나먼 곳으로 향하는 붉은 세 갈래 길. 그위에 유유히 무언가 죽음을 암시하며 날아가는 (혹은 날아오는) 까마귀 한 무리는 나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아주 절실히 나에게 무언가 말하고자 하는 그림을 보면서,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지 알 수 없던 나는 매우 갈증을 느끼게 되었다. 과연 까마귀들과 밀밭은 나에게 무었인가? 고흐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나? 이 어둡고 격렬히 변하는 하늘이 내게 주는 이 느낌은 어디에 기인한 것인가? 이런 질문에 해답을 얻기 위해 이 그림과 관련된 자료를 찾아 보게 되었고, 결국 이 그림에 대한 글을 쓰게 되었다.

왜 까마귀는 왜 밀밭위를 날아갔나?



1. 격렬한 그러나 엄숙한

Wheatfield with Crows

그림 1] Vincent van Gogh (1853-1890), Wheatfield with Crows, 1890, Oil on Canvas, 50.5 X 103 cm, Van Gogh Museum, Amsterdam, (Vincent van Gogh Foundation), F 779


1.1
이 그림은 고흐의 마지막 시기에 그려졌던 풍경화 연작중 하나인데, 좀 특이한 규격(50㎝×100㎝, 실제는 51㎝×103.5㎝)으로 횡으로 장대한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그림 한가운데 가장 광활하게 황금빛 밀밭이 펼쳐져 있다. 그러나 이 밀밭은 밀레의 [이삭줍기]등에서 보여지는 낭만적이고 고요한 밀밭이 아니다. 바람에 격렬히 몸을 뒤틀고 있는 장면은 거칠고 야만적인 자연의 힘을 과시한다. 밀 줄기와 줄기들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마치 들리는 듯 하다. 강한 붓 터치로 힘있게 흔들리는 밀밭은 고흐가 해바라기 연작으로부터 만들어낸 강렬한 노란색을 사용해서 한층 더 억세어 보인다. 강하면서 천하지 않고, 난폭하지만 위엄이 있는 밀밭이 탄생한 것이다.

1.2 광활한 밀밭을 가로지르는 세 갈래 길이 우리의 눈을 사로잡는다. 길은 총 세 갈래인데, 두 개의 길은 오른쪽, 왼쪽 귀퉁이에서 양쪽 밖으로 빠져나가고 있고, 중앙의 길은 저 편 지평선을 향해 뻗어있다. 이 세 갈래 길이 밀밭을 두 역삼각형 모양으로 나누고 있다. 길의 표면은 포도주빛으로 물들어서 마치 피와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양쪽으로 향한 길들은 그 끝이 화면의 양 테두리에 의해 잘려 있어서 막히고 단절된 느낌을 주지만, 중앙의 길은 지평선과 맞닿아 있기에 무언가 그 끝에 기다리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1.3 중앙의 길을 따라 저 지평선 너머로 가다보면 우리는 밀밭을 덮고 있는 검푸른 하늘을 보게 된다. 이 하늘은 보통 하늘이 아니다. 검은색과 청색의 붓놀림은 우리에게 이 하늘이 아주 심하게 요동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암울하고 불길한 느낌에 마치 폭풍이 오기 전의 하늘을 보는 듯 하다. 요동치는 하늘과 하늘 사이에 구름이 두 조각 떠 있는데, 구름역시 심하게 휘날리고 있으며 좀더 어두운 느낌을 준다.

1.4 격렬히 요동하는 밀밭과 어두운 하늘 사이로 한 떼의 까마귀들이 유유히 날아가고 있다. 오른쪽 위 모서리에 작은 까마귀들은 점차 왼쪽 아래로 내려오면서 커지고, 그림 중앙까지 내려오고 있다. 이 새들의 모습은 굵은 붓터치로 간단하지만 힘있게 그려지고 있다. 자세히 보이지 않기 때문에 멀리 저 하늘 너머로 날아가고 있는지, 아니면 우리에게로 다가오고 있는지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이 모호함 때문에 검은 까마귀들은 좀더 신비스런 느낌을 준다.

“어떤 화가도 빈센트만큼 그 까마귀 그림에서 볼 수 있는 소나무 버섯 색깔과 같은 검은색, 화려한 연회의 느낌을 주는 검은색, 그리고 저녁시간 사라져 가는 빛에 놀라서 날갯짓하며 떨어뜨리는 배설물과 같은 검정색을 더 잘 만들어 낼 수는 없을 것이다.”

라고 안토닌 아르토드는 말하고 있다.

1.5 전체적으로 하늘의 검푸른 빛과 밀밭의 억센 노란 빛, 그리고 까마귀의 검정색이 힘차고 장엄하며 엄숙한 분위기를 나타내고 있다. 자연의 강한 힘과 권능에 죽음이나 운명 같은 위험함이 느껴지지만, 밀밭과 하늘, 그리고 심지어 까마귀의 역동적인 모습이 삶에 대한 희망을 넌지시 던지고 있다.


2. 곳곳에서 느껴지는 죽음의 징후들

2.1 길은 가장 큰 밀밭을 바로 거침없이 가로지르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 끈다. 이 길은 세 갈래로 나뉜다.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양쪽의 길과, 관람자의 시선에서 시작해서 저 멀리 지평선으로 향하는 중앙의 길이다. 이 양쪽 길은 시작과 끝이 모호하기에 고흐가 당시 삶에서 느꼈던 인생의 지평에 대한 혼란을 의미한다. 어쩌면 불안을 상징할지도 모른다. 반면 화면 가운데어서 곧게 뻗어 나간 길은 무언가 희망을 주고 있다. 확실하진 않지만 미래를 향해 뻗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이 길이 저 새로운 세상인 지평선과 만나는가 아니면, 닿지 못하고 결국 끊어질 것인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이 길의 끝은 희망의 세상이 아니라 죽음일지도 모른다. 고흐는 아마도 피해갈 길이 양쪽에 있지만, 곧게 뻗은 파멸(혹은 희망)의 가운데 길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Beach at Scheveningen in Stormy Weather

그림 2] Beach at Scheveningen in Stormy Weather, Oil on canvas on cardboard. 34.5 x 51.0 cm. The Hague: August, 1882. F 4, JH 187


2.2 그는 종종 폭풍이 몰아치는 하늘을 그리곤 했다. [폭풍우가 치는 쉬베닝겐의 바닷가 Beach at Scheveningen in Stormy Weather]에서와 같이 험한 하늘은 자연의 힘을 상징한다.

이러한 하늘은 그에게 매우 큰 영감을 주고, 강렬한 느낌을 주었다. 더구나 고흐는 이런 폭풍우가 몰아치는 하늘에서 암울함만 본 것이 아니라, 생명력있고 긍정적인 면도 보았다. 한 편지에서는 “항해사들은 때때로 폭풍우에 휩쓸려 조난당하는 대신에, 그것을 이용하여 길을 성공적으로 길을 찾아 나가기도 한다.”라고 쓰고 있다. ("The pilot sometimes succeeds in using a storm to make headway, instead of being wrecked by it." - letter 197)

이 밀밭 그림에서도 하늘은 폭풍우가 다가옴을 느끼게 하고, 암울하고 불길한 미래에 대한 전조로써 읽혀진다. 그러나 강렬함은 삶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못하게 한다. 어쩌면 현재의 삶을 뛰어 넘는 삶을 의미하는 것일 수 있다.

2.3 하늘을 가로질러 가는 까마귀는 자유와 죽음의 상징이다. 과연 이 까마귀들은 단순히 죽음을 의미하는가? 대부분의 경우 까마귀는 죽음에 대한 알레고리로 읽혀진다. 까마귀는 불길하고 위협적이고 공격적인 죽음의 상징(Schapiro, 1952)이다. Heimar(1976)은 “단순한 죽음이 아닌 폭력적 죽음을 상징하는 검은 새를 통하여, 이 그림은 익사당하는 사람처럼 굴복하여 죽음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공격당하고 죽임을 당하여 종국에는 먹어치워질 것이라는 두려움에 직면한 사람을 뜻한다”고 말하고 있다.

반면에 단순히 죽음만을 의미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까마귀는 죽음을 상징하지만, 고흐는 자연에 대한 예리한 눈으로 사물을 다르게 인식하고 있었다. 그의 편지들에서 보면,

“나는 오늘 아침 대성당에 많은 까마귀가 있는 것을 보았다. 이제 곧 봄이 오고, 종달새가 돌아오겠지. ‘하느님은 땅의 표면을 새로이 한다.’ 라고 씌어있다. ‘보라, 나는 모든 사물을 새로이한다.’ 그리고 신이 대지의 표면을 새롭게 하듯이, 사람의 영혼과 마음과 가슴에 힘을 불어넣고 새로이 할 수 있겠지.”
I did see a great many crows on the Great Church in the morning. Now it will soon be spring again and the larks, too, will be returning. "He reneweth the face of the earth," and it is written: "Behold, I make all things new," and much as He renews the face of the earth, so He can also renew and strengthen man's soul and heart and mind.
- letter 85

그에게 있어 까마귀는 죽음 이상의 무언가를 뜻하고 있다.

또한 까마귀를 보는데 있어서 생각해 볼 것이 또 하나 있다. 까마귀떼의 방향 문제인데.. 까마귀는 우리를 향해 날아오는 것일까? 아니면 저 하늘 너머로 날아가고 있는 것일까? 이것은 죽음의 운명을 몰고 내려오는 것일 수 있고, 또는 죽은 고흐(혹은 감상자)를 저 세상으로 인도하는 것일 수 있다.

2.4 화면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며 강한 인상을 주고 있는 밀밭은 날아가는 까마귀의 배경 이상의 역할을 한다. 밀밭 또한 고흐가 자주 그리던 주제중 하나인데, 그에게 있어서 밀밭은 사람의 삶을 의미한다. 반 고흐는 마치 농부처럼 밀의 성장과정을 주의 깊게 지켜보았다. “밭에 씨를 뿌리는 자가 곡식을 거두는 것처럼, 영혼에 씨를 뿌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얻으리라.”, “어린 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순수하고 부드러운 어떤 것을 나타내며, 잠들어 있는 어린아이에게서 느낄 수 있는 것과 흡사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글에서 볼 수 있듯이 밀밭은 삶을 상징한다.

“나는 밀과 사람이 같다고 강하게 느끼고 있다. 사람이 땅에 심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 무슨 문제인가? 결국 맷돌에 갈려 빵이 되어 버릴 것을. 불행과 행복의 차이라! 둘다 죽음이나 소멸같이 유용하고 필요한 것이지... 매우 상대적이다. 그리고 삶또한 똑같다.” ("I feel so strongly that it is the same with people as it is with wheat, if you are not sown in the earth to germinate there, what does it matter?--in the end you are ground between the millstones to become bread.
The difference between happiness and unhappiness! Both are necessary and useful, as well as death or disappearance . . . it is so relative--and life is the same. “ -letter 607)

이러한 삶을 상징하는 밀밭이 길에 의해 조각나 있고, 어두운 하늘에 깔려 있으며, 바람에 요동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삶이 순탄치 않고 위태롭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물론 하늘이나 까마귀에서처럼 격렬히 요동하는 모습이 또 다른 삶의 역동성을 보여주고 있지만.


3. 죽음을 몰고 오는 그림

이 그림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은 그의 자살과 연관지어 일종의 유서(suicide note)의 역할을 한다는 해석이다. 과연 그럴까?

3.1 이 그림이 자살을 직접적으로 의미한다는 것은 통상 이 그림이 그의 마지막 작품 - 유작일 것이라는 일반적인 통념 때문에 더 극적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 작품이 그의 마지막 시기의 작품인 것은 확실하지만, 죽음 직전에 그려졌다는 증거는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가 편지에서 언급한 대로 마지막 3작품에 이 [까마귀가 나는 밀밭 Wheat Field with Crows]가 포함되는지 조차 모호하다.

“그것들은 혼란스러운 하늘아래 광활히 펼쳐진 대지에 대한 것이다. 나는 극도의 슬픔과 외로움을 표현하기 위해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었다. 나는 네가 이 그림들을 곧 봤으면 한다. 내가 말로 못하는 것을을 이 그림들이 네게 말해줄 수 있을 것 같기에 될 수 있는 대로 파리에 가서 네게 이 그림들을 보여주고 싶다. 내가 여기 온 이레 생각하고있던 ”다우비니의 정원 Daubigny's garden"이 세 번째 그림이다.“
(“They are vast fields of wheat under troubled skies, and I did not need to go out of my way to try to express sadness and extreme loneliness. I hope you will see them soon--for I hope to bring them to you in Paris as soon as possible, since I almost think that these canvases will tell you what I cannot say in words, the health and restorative forces that I see in the country. Now the third canvas is Daubigny's garden, a picture I have been thinking about since I came here.” - letter 649)

고흐의 편지에 전문가인 Jan Hulsker박사는 [까마귀가 나는 밀밭]과 [구름낀 하늘과 밀밭 Wheat Field under Clouded Sky]이 고흐가 말한 세 작품중 둘이 아니라, [밀밭 The Fields]와 [오베르의 들판 Wheat Fields at Auvers under Clouded Sky]이 그 세 작품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이 네 작품 모두 고흐가 말한 ‘혼란스러운 하늘 troubled skies'를 그리고 있다. 고흐가 편지에 어떻게 썼느냐를 두고 논란이 많지만, 고흐 전문가 Ronald Pickvance는 [까마귀가 나는 밀밭]이 사건이 일어나기 거의 3주 전인 7월 7일에서 10일 사이에 그려졌다고 주장했다.

이 시간 간격 때문에, 이 그림이 그의 마지막 유작이기 때문에, 그의 작품에서 유서의 느낌이 난다는 해석은 조금 무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아마도 대중적인 서술이나 묘사(특히 영화나 소설)에서 이 작품이 유작 - 혹은 유서 - 로써 등장하는 것은 극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The Fields

그림 3] The Fields, Oil on canvas, 50.0 x 65.0 cm. Auvers-sur-Oise: July, 1890. F 761, JH 2120


Wheat Field Under Clouded Sky

그림 4] Wheat Field Under Clouded Sky, Oil on canvas. 50.0 x 100.5 cm. Auvers-sur-Oise: July, 1890. F 778, JH 2097


Wheat Fields at Auvers Under Clouded Sky

그림 5] Wheat Fields at Auvers Under Clouded Sky, Oil on canvas, 73.0 x 92.0 cm. Auvers-sur-Oise: July, 1890. F 781, JH 2102


Daubigny's Garden

그림 6] Daubigny's Garden, Oil on canvas, 53.0 x 103.0 cm. Auvers-sur-Oise: July, 1890. F 776, JH 2104


3.2 죽음 직전에 그려진 그림이 아니긴 하지만, 이 그림은 강하게 죽음 - 자살 -을 암시하고 있다. 이 그림이 첫눈에 보기에도 불안하고 뭔가 위험한 느낌을 가져온다. 무엇이 그러한 느낌을 주는 것일까? 이유는 가장 가까이 보이는 밀밭과 세 갈래 길에 있다. Shapiro(1952)는 ‘밀밭은 세 갈래 갈림길에 의해 전경으로부터 밖으로 열려있다. 선들은 흐르는 냇물처럼, 수평선에서 앞쪽으로 흐른다. 마치 공간이 초점을 잃고 모든 것이 관람객을 향하여 돌아선 것처럼... 인간의 길과 반대방향으로 향하는 까마귀들의 불길한 날개짓의 움직임을 보라. 마치 (작가가) 불길한 운명이 다가오는 것을 느꼈던 것처럼. 화가와 관객은 객체가 된다’고 말했다.

또한, 일반적인 원근법에 의하면 밀밭은 멀어질수록 작은 부분들로 나뉘어 지고 점차 희미해 져야 한다. ([오베르의 들판]에서 보듯이) 그러나 작가가 고의적으로 이 규칙을 어겼는지, 아니면 극도의 혼란상태에서 그려진 그림이라 그런 것인지 확실치는 않지만, 역삼각형 모양의 밀밭은 상당한 불안감과 공포를 관객에게 주고 있다. 고의적인 원근법의 파괴가 아니더라도, 고흐의 무의식에 나타난 죽음에 대한 불안이 이러한 구도를 그리게 했을 것이다.

“... 그러나 길과 맞물려 안정되고 친근한 땅은 원근에 저항하는 듯이 보인다. 작가의 의지는 뒤죽박죽 되었다. 세상은 그를 향해 오나, 그는 세상으로 나아갈 수 없다. 마치 그가 완전히 차단되었으나, 음울한 운명이 다가오는 것을 느꼈던 것처럼 말이다. 작가는 고통받고 나뉘어 졌으며....” (Shapiro, 1983)

또한 두 개의 역삼각형 모양은 어머니의 가슴을 상징한다. 어머니는 포옹하고 감싸고 사랑을 베풀어 준다. 이것은 땅(가이아(Gaia)나 데메테르(Demeter))의 의미와도 통한다. 어머니 - 땅은 두가지 모순된 이미지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삶과 죽음이다. 땅은 생산하며, 생명을 창출해 낸다. 또한 모든 생물은 죽어서 땅으로 돌아간다. 어머니도 마찬가지 의미를 지닌다. 어머니의 자궁에서 태어나지만, 또한 어머니 품에 안기는 것은 영원한 안식 - 죽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성서의 예수를 안는 마리아 - 피에타 -를 생각해 보자.)

하지만, 어머니의 포옹은 위협적인 죽음으로 인도하고 있고, 어머니의 자궁은 무덤이 된다. “La Berceuse"의 부드럽고 온화한 가슴 대신에 ”두개의 거대하고 위협적으로 강조된 날카로운 가슴이 화가와 관객을 공격하고 살해하려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 Heiman, 1976

The Pieta

그림 7] The Pieta(after Delacroix), Oil on canvas, 73.0 x 60.5 cm. Saint-R?y: May, 1890. F 630, JH 1775


3.3
밀밭과 더불어 어두운 하늘 역시 암울한 분위기로 죽음의 예감을 강화하고 있다.


‘하늘은 매우 낮고 상처를 입었으며, 빛의 낮은 가장자리처럼 바이올렛 색채를 띄고 있다. 섬광이 있은 후에 솟아오르는 허공의 가장자리에는 이상한 그림자가 감돈다.’ - 안토닌 아르토드

어두운 하늘은 폭풍이 몰아쳐 올 것을 예고하고 있으며, 폭풍은 또다른 죽음의 상징이다.

3.4 그런데.. 이렇게 모든 소재에서 보이는 죽음의 징후는 어떤 죽음에 대한 예감인가? 단순한 죽음인가? 아니면 또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이제 우리는 고흐의 사상적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는 젊은시절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목사 - 혹은 전도사가 되고자 했던 사람이다. 또한 동생 테오와 교환한 서신에서 볼 수 있듯이, 계속해서 하느님 - 종교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 성직자적인 삶의 태도는 중요한 것이고, 직접 낮은 곳으로 임하여 복음을 전파하는 것과, 그림을 그림으로써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것은 유사한 행위였다. 그렇게 생각하던 그가 정신적 문제와, 갈등으로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는 날이 올 것을 예감한 순간 무엇을 갈망했을까?

그림에 가득찬 불길한 절망의 분위기는 예수의 ‘십자가 매달리심’에 대한 이미지와 공명하는 부분이 있다. 밀밭을 가로지르는 길들은 십자가에 대한 표상이며, 어두운 하늘은 예수가 십자가위에서 죽음을 맞이한 후에 하늘에 어둠이 덮혔다는 성서의 기술을 상징한다.

“낮 열 두 시가 되자 온 땅이 어둠에 덮여 오후 세 시까지 계속되었다. 세 시에 예수께서 큰 소리로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하고 부르짖으셨다. 이 말씀은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뜻이다.” - 마르코복음 15장 33절-34절.

Lebin은
“[까마귀]그림은 임박한 운명을 경고하듯 우울하다. 그러나 십자가형으로써 빈센트가 간절히 바라던 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것은 환생하여 기쁘게 신의 천국으로 승천할 것을 예고하고 있다. 고통스러우면서 동시에 희망적인 이 사건의 초점은, 십자가 위의 순교자의 죽음과 그를 기다리고 있는 영원한 기쁨 사이에 놓여 있다. 까마귀들은 그의 운명을 결정하러 내려오지만, 그들은 천국의 문까지 그를 인도해 줄 것이다.”

고 말하고 있다.

이상에서 볼 수 있듯이, 이 그림에서 암시하는 죽음은 단지 사라짐으로써 끝나는 것이 아닌, 십자가 부활로써 상징되는 새로운 세계로의 부활을 의미한다. 고흐는 더 이상 세상에서 그림을 그리며 살 수 없음을 느꼈지만, 삶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좀더 나은 생명을 얻기 위해 다른 세상으로 향하고 싶었던 것이리다. 죽음 - 재생 - 환생의 진행은, 땅에 씨가 뿌려져 싹을 맺고 자라나는 밀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그림에서 보여지는 죽음과 생명의 모순적인 상징은 새로운 삶을 위한 - 현세의 삶은 아닐지라도.. -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4. 까마귀가 나는 밀밭

그림으로써 세상에 빛을 비추고자 했던 고흐의 삶은 당시에는 실패로 보였을지 모른다. 또한 고흐는 삶의 마지막 순간에 절망했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인 삶의 종결이 인류에 있어서는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다는 예수 부활의 의미를 이 그림에 남겨 놓은 것으로 읽혀 질 수 있다. 죽음에 대한 절망과 새로운 생명에 대한 기대와 희망으로..

고흐는 죽었지만, 그의 작품은 계속해서 세상에 빛을 뿌리게 될 것이다.


5. 후기

이 작품에 대한 감상 - 혹은 분석 - 의 글을 쓰기 위해 여러 가지 책을 보고, 도판을 보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칼라 도판의 그림에서 색채의 변동이 심했다. 한 책의 밀밭은 화려한 노란색인 반면, 다른 책의 사진에서는 칙칙한 노란색이었고, 어떤 책에서는 심지어 하늘 부분에 라이트(사진 찍을 때 켰을 법한)의 반사광이 보이기까지 하였다. 고흐는 그의 작품들중 특히 해바라기 연작을 통해서 특유의 강하고 화려한 노란색들을 개발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를 이 작품에 사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칼라 도판의 색체가 그의 빛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도판을 보면서 느낀 감정은 얼마나 사실을 반영한 것일까? 특히, 컴퓨터로 이 그림을 인쇄해 보면서 작은 색채의 변화가 그림의 분위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실제 작품의 크기보다 작은 축소판의 그림들만 봤기 때문에 정말 이 그림이 어떤 감흥을 일으키는지 짐작 해 보는 수밖에 없었다.

결국, 작품에 대한 정확한 인상을 얻기 위해서는 진품을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진품을 칭송하고, 집착하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리라.

이 작품을 주제로 결정하고 나서 이 그림을 거의 매일같이 보고 살았다. 인쇄해서 방안에 한 장 붙여놓고, 한 장은 들고다니고, 컴퓨터 모니터의 바탕화면으로도 설정했으니 말이다. 처음에는 그냥 광대하고 무언가 마음이 움직이는 느낌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림을 쳐다볼수록, 여러 사람의 그림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고 같이 생각할수록 그림이 이야기 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좀더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냥 그림을 바라보고 첫인상만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곁에 두고 대화를 하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를 알게 되었다.

유흥준씨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그림을 보는데 있어서도 적용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그림에 대한 지식을 많이 갖는다고 그림이 입을 열지는 않을 것이다. 그림에 관심을 가지고 대화를 하려고 노력하면, 그림은 그만큼 자신의 이야기를 해 줄 것이고,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느낀 것처럼, 내게도 뜨거운 감동과 따뜻한 평온함을 선사해 줄 것이다.


6. 참고자료
1. 반 고흐, 태양의 화가, 파스칼 보나푸 지음, 송숙자 옮김,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주)시공사, 서울, 1999
2. 반 고흐, 마리 엘렌 당페라, 카롤린 마티유, 모니크 논 공저, 신성림 옮김, 창해ABC북, 도서출판 창해, 서울, 2000
3. 반 고흐, 정문규, 서문당 컬러백과, 서문당, 서울, 1999
4. VINCENT'S RELIGION, The Search for Meaning, W.W.MEISSNER, S.J., M.D., Peter Lang Publishing, Inc. NewYork, 1997
5. 공동번역 성서, 대한성서공회, 서울, 1990
6. http://www.vangoghgalle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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